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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유럽

이탈리아 ~ 로마 시내투어.

by 눈사라 2016. 8. 5.



                                                                                       멋진 올드카도 보고.

                                                                          이탈리아제 명품 신발 백만원이 훌쩍 넘는다.


                                                                                               스페인 광장

스페인 광장은 로마 시내에서 가장 활기차고 화려한 지역으로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7세기에 이곳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던 데에서 광장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특히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배경으로 나온 스페인 계단 주변이 유명하다. 1722년에 건립된 137개의 우아한 스페인 계단을 올라가면 언덕 위에 삼위일체 성당(Trinita dei Monti)이 있고 그 앞에는 성모마리아를 기념하는 원기둥이 세워져 있다. 광장은 수세기 동안 로마 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휴식처이자 여행객들에게도 약속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다. 봄철에는 광장의 계단을 커다란 진달래꽃 화분으로 장식해 로마 최대의 꽃 잔치가 열린다.

바이런, 리스트, 괴테, 발자크, 안데르센 등 유명 예술가들도 로마에 머물 때 이 광장 주변의 집에서 기거를 했다. 계단 오른쪽에는 영국의 서정시인 존 키츠가 1821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집이 있는데(광장 26번지) 현재는 키츠와 셸리, 두 영국 시인의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삼위일체 성당 북쪽으로 보이는 빌라 메디치(Villa Medici)는 로마 주재 프랑스 아카데미 건물이다. 예부터 프랑스 정부의 '로마 대상(Prix de Rome)'을 받은 프랑스의 화가, 음악가, 건축가 등이 거쳐 간 곳이다.

계단 바로 앞에 있는 바르카차의 분수(Fontana della Barcaccia : 낡은 배의 분수)는 테베레 강에서 와인을 운반하던 낡은 배(바르카차)를 본떠 만든 것으로 이탈리아 바로크를 대표하는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로렌초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르토 베르니니가 제작했다. 로마에 홍수가 지나간 후 이곳에 조그만 조각배가 하나 남아 있었는데, 이 조각배에서 영감을 얻어 17세기에 만들었다고 한다.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비는데 앉아서 쉴 자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바르카차의 분수의 물은 깨끗해서 식수로 써도 무방하다. 수질이 좋기로 유명한 로마의 용출수 중에서도 트레비 분수와 함께 가장 맛있는 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 광장에 가면 우선 스페인 계단 꼭대기까지 올라가 잠시 앉아서 쉬자. 계단에서 직선상으로 마주보이는 분수대와 콘도티 거리를 바삐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있다. 따라서 이곳에서 촬영하면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붐빌 때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스페인 광장 바로 앞에서 시작되는 콘도티 거리에는 일류 브랜드 숍이 줄지어 있고 주변 거리까지 화려한 브랜드 부티크가 많아 로마 제일의 쇼핑 구역으로 꼽힌다. 또한 코르소 거리 주변으로는 박물관 등이 자리하고 있어 많은 이들이 이 광장을 거쳐 간다. 광장 주변은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트레비 분수


로마에 있는 분수 중 최고의 걸작이자 가장 인기 있는 분수. 트레비 분수는 세 갈래 길(Trevia)이 합류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트레비 분수에 가면 전 세계 동전을 모두 볼 수 있다. 분수를 뒤로 한 채 오른손에 동전을 들고 왼쪽 어깨 너머로 1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2번 던지면 연인과의 소원을 이루고, 3번을 던지면 힘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저마다 소원을 빌며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는 장면도 이곳을 한층 낭만적인 장소로 기억하게 한다.

팔라초 폴리(Palazzo Poli)의 건물 한쪽 면을 화려하고 역동적인 조각군들로 장식하고 있는 트레비 분수는 로마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바로크 양식의 걸작으로 상징되는 명물 중의 하나다. 트레비 분수는 1453년 교황 니콜라우스 5세가 고대의 수도 ‘처녀의 샘(Acqua Vergine)’을 부활시키기 위해 만든 것에서 시작된다. 처녀의 샘이라는 이름은 목마른 로마 병정들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나 물이 있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한 데서 유래한다. 그 후 1726년, 교황 클레멘스 13세 시절에 니콜라 살비가 설계를 담당하고 30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성되었다.

이 분수 가운데에 있는 조각상은 바다의 신 넵튠(포세이돈)이고, 그의 아들인 반신반어의 바다의 신 트리톤이 나팔을 불면서 이끌고 있는 두 마리의 말은 각각 잔잔한 바다와 격동의 바다를 상징하는데 이 아름다운 배경 조각은 피에트로 브라치의 작품이다. 넵튠 신 좌우에 있는 석상은 풍요와 건강을 상징한다. 이 분수의 물은 기원전 19년 아그리파에 의해 축조된 수로를 통해 들어오는데, 왼쪽 상부에 있는 부조는 아그리파 수로 축조에 관한 사실을 담고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해가 지고 나서 이곳을 다시 찾아보자. 트레비 분수는 밤에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어둠 속에서 투광 조명을 받아 빛나는 트레비 분수의 아름다움을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단, 소매치기(집시)는 조심해야 한다. 또한 일요일은 여행객뿐만 아니라 로마 시민들도 자주 찾아와 매우 복잡하므로, 로마 체류일이 여러 날이라면 가급적 일요일은 피하는 것이 좋다.











                                                                    아이스크림 정말로 맛있구나~~





                                                                            판테온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는 고대 로마의 유적. 기원전 27~25년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양아들 마르쿠스 아그리파에 의해 세워졌으며 7개 행성의 신들을 경배하기 위한 건축물이다. 80년에 화재로 파손되었다가 118~12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재건되었다. 609년에는 성모마리아와 모든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성당이 되었다. 2,000년을 이어 간 로마제국의 현존하는 건축물 중 가장 보존이 잘되었는데 특히 이 건물의 청동문과 돔은 손상되지 않아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판테온은 그리스어로 '모든 신들에게 바쳐진 신전'이라는 뜻이다. 즉, 로마 전역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을 위해 세운 성전으로 로마인의 관용 정신을 상징한다. 판테온의 기본 구조를 이루고 있는 반구는 우주를 상징하며, 거대한 돔의 정상에 뚫린 구멍은 행성의 중심인 태양을 상징한다. 둥근 천장에는 각 격자마다 청동 별들로 장식되어 판테온 내부에서 '우주'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지붕에는 금박을 입혀서 외부에서, 특히 주변의 언덕에서 멀리 봤을 때 태양처럼 보이도록 했으나, 17세기 교황 우르바노 8세가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베르니니의 청동 기둥에 사용하기 위해 금박 200톤을 제거해 갔다고 한다.

판테온의 입구는 16개의 코린트식 화강암 원기둥으로 된 주랑 현관으로 되어 있다.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공간이 나온다. 건물 내부의 둥근 천장은 높이와 직경이 똑같이 43.40m(성 베드로 대성당 돔보다 크다)로 완벽한 비율의 일치를 이뤄서, 돔은 정확하게 건물 내부 높이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 지점에서 바닥쪽으로 원을 그려 보면 정확한 구의 모양을 상상할 수 있는데 이렇듯 조화와 균형이 있는 건축미가 돋보인다. 1958년 파리 CNIT가 세워질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콘크리트 돔이었다. 내부에 기둥은 전혀 없고 무거운 돔의 중량을 지탱하고 있는 벽이 유일한데, 이 벽은 아치 공법에 의해 만들어져 두터운 벽제 안에 7개의 부수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이곳에는 로물루스, 주피터 신, 마르스, 카이사르 등의 석상이 있다.

판테온 내부에 들어서면 당시의 탁월한 건축 수준을 알 수 있다.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은 내부를 고르게 밝혀 주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추는 각도가 변한다. 마치 하늘이 판테온의 내부 공간에 스며들어 오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해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신에 대한 경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라파엘로는 1520년 사망하고 이곳에 안치되었는데 그의 무덤 위에 <돌의 성모마리아 Madonna del Sasso>라는 아름다운 조각상이 있다. 이것은 그의 문하생 로렌쩨토의 작품이다. 판테온은 이탈리아 왕들의 영묘로도 쓰였다. 여기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움베르토 1세와 왕비 마르게르타의 무덤이 있다














                                                  2000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 보전이되었다니 대단하네요~~








                                                                                        빅토리아 엠마뉴엘 2세 기념관



                                                                                             캄피돌리오 광장


고대 로마의 발상지로 전해지는 7개 언덕의 하나인 카피톨리노언덕 한 모퉁이에 미켈란젤로의 구상으로 1547년에 건설되었다. 큰 계단 위에 전개된 이 광장은 좌우 양쪽의 한 쌍의 건물, 즉 카피톨리노박물관(1644∼1655)과 팔라초 콘세르바토리(1564∼1568) 및 안쪽 정면의 시청사(1592년 완성)의 3개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좌우 건물이 마주보는 간격은 투시효과()의 조화를 위하여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향할수록 넓어지게 배치되어 있다. 광장 중앙에는 로마의 현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이 있다. 광장과 건물의 디자인은 그 수법의 독창성과 공간통일()의 탁월성으로 해서 미켈란젤로의 가장 뛰어난 건축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포로 로마노유적.

고대명은 포룸 로마눔(Forum Romanum[라틴어]). 로마에 있는 가장 오래된 포룸(도시광장). 처음에는 두개의 연못이 있었고, 카피톨리노 언덕 옆에는 사투르누스와 우르카누스에게 바치는 희생단이 있었다. 그리고 팔라티노 언덕 옆에는 베스타 신전과 무녀()의 집, 사제장의 집이 있었다. 연못을 샘으로 축소해서 광장을 만들고, 중앙부는 시장, 북서 모퉁이가 시의 집회장(코미티움)이 되고 양쪽 경계에 연단(로스트룸)이 세워졌다. 이후 B.C. 4세기에 콘코르디아 신전, B.C. 3세기에 감옥(투리아눔), B.C. 120년에 콘코르디아 신전개축에 이어서 신축과 개축이 계속되었다. 현재 유적이 확인되는 것으로는 쿠리아(원로원 의원). 바실리카 아에밀리아(B.C. 179), 레기아(고왕[])의 집), 파우스티나 신전, 티우스율리우스 신전, 아우구스투스의 개선문(B.C. 21), 카스트르와 포르쿠스의 신전, 바실리카 율리아(B.C. 46), 사투르누스 신전(A.D. 4세기 재건), 디이 콘센테스의 열주(), 로스트룸(카에사르 및 아우구스투스 재건), 티투스 제() 개선문(A.D. 28),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제 개선문(A.D. 203), 막센티우스의 바실리카(A.D. 310~313), 웨누스와 로마의 신전(A.D. 135) 등이 있다. 포로 로마노의 북쪽에 접해서는 제황제의 포룸군(), 즉 카에사르(B.C. 54~B.C. 44), 아우구스투스(B.C. 40~B.C. 30경), 베스파시아누스(A.D. 1세기), 트라야누스(A.D. 98~112)의 포룸이 있다.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진실의 입 




얼굴 앞면을 둥글게 새긴 대리석 가면으로, 지름은 1.5m 정도이다. 기원전 4세기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것인데, 이 조각상이 진실과 거짓을 심판하는 '진실의 입'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다.

로마시대에는 가축시장의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되었다고도 하는데, 확인되지 않는다. 중세 때부터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사람을 심문할 때 심문을 받는 사람의 손을 입 안에 넣고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릴 것을 서약하게 한 데서 '진실의 입'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진실을 말하더라도 심문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손을 자르도록 미리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고 한다.

진실의 입이 있는 보카델라베리타광장의 '보카'는 '입', '베리타'는 '진실'을 뜻하는 것으로 미루어 광장 이름도 진실의 입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마리가() 산타마리아델라교회 입구의 한쪽 벽면에 있으며,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입 안에 손을 집어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A. 헵번(Audrey Hepburn)과 G. 펙(Gregory Peck)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 Roman Holiday》로 유명해진 이래, 로마의 명소 가운데 하나로 국내외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바로 인근에 있는 샘에는 등을 돌린 채 동전을 던져넣으면 로마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전설을 간직한 트레비분수가 있다.





                                                                                          전차경기장



                                                                                                        콜로세움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Amphitheatrum Flavium)'이라고 한다. 플라비우스 왕조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본래는 비공식 이름이었던 콜로세움(Colosseum)의 유래에 대해서는 원형 경기장 근처에 있던 네로 황제의 거대한 청동상(Colossus Neronis)과 명칭이 혼동되었다는 설과 '거대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콜로살레(Colossale)와 어원이 같다는 설이 있는데 중세에는 그 자체가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글라디아토르()의 시합과 맹수연기() 등이 시행되었으며, 그리스도교 박해 시대에는 신도들을 학살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피지배계층의 관점이나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다소 잔인한 측면이 있으나 고대 로마 시민들에게 원형 경기장은 경기를 보며 일체감을 느끼고 그 내용을 즐기는 하나의 공공 오락시설이었다.

한편, 로마 정치가들에게 원형경기장은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화합을 도모하며 때로는 로마나 귀족의 권위에 불복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보복을 암시하는 공간이었다.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은 높이 48m로 4층이며,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이오니아식·코린트식의 원주()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다.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으로 설치되어 있다.






















                                                                     로마에서 피렌체로 이동을 하면서 만나는 풍경.

                                                                             피렌체의 언덕위에 있는 호텔식당의 멋진 풍경







                                                       이동을 하다가 보면은 집들이 대부분 평지가 아니고 산위에 집이 있다

                                                             성도 절벽을 깍아 성을 만들어  적들의 침입을 막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