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리 우회도로에 조성된 화단에 아름답게 꽃이 만발 했구나....
작년에는 5월 5일에 절정을 이루었는데 10일 정도 늦구나
요즘은 지자체가 되고 신경을 많이 쓰는구나 이건 권군수님의 힘으로 만든 작품이란다 ㅎㅎㅎㅎ정구는 역시 능력이 있어요 ~~~~
안덕면 면소재지....
멀리 복동교회가 보이고...
아름다운 꽃길
이쪽이 원복동 순광이네 마을 ...비슷한것 같은데...
요것이 석주의 행복한 신혼집 전번에 갔는데 아마 맛을꺼야~~~
복동교회 그렇게 많이 지나도 한번 들어가 보지를 않았구나 교회 뒤에가 바로 진섭이네 집 이 마을에 여친들이 선옥이 재옥이 양섭이 영숙이가 살았다네 ~~~
요기는 태백이네집 목사님 잘 계시죠 언제 목사님 모시고 설교를 한번 들어야 하는디~~~
요기는 움못골 장기성이네 마을
요기가 김지인데 변두리라 한번도 안가봐 정확하게 모르겠네 웃김지 아래김지는 들었는데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네
영미가 정확하게 설명하기 바란다
김지에 사는 친구가 지호 원기 호영 래우 화윤 여친들이 영미 필순 효숙 영순 순향 정희(큰 가다).....
요기가 태선이네 마을 사부실 은숙 경화 옥자 문희 정숙 순자 ....사부실에는 여자들만 있고 남자가 하나도 없구나
이런데 태어나야 인기좋은데ㅎㅎㅎㅎ
사부실 여불때기에 정환이가 사는데 여자들이 기가 세어 어릴때부터 정환이가 꼼짝을 못해 아직도 그 휴유증으로
비실비실하구나 ㅎㅎㅎㅎ태선아 맛제 ~~~~
요기가 현남초등학교 지금은 폐교되어 버섯재배단지로 변했나 ?
학교에 다닐때 바로 보이는 사과밭이 현남초등학교 소유였는데 심심하면 공부는 안 하고 인력 동원되어 사과밭에
자갈 주워내고 물주고 세빠지게 일하고 사과나무에다 개인 이름을 하나씩 달아 분양 해 놓고 일만 죽어라고 하고
사과 맛본 기억은 없구나
사과 몰래 따 먹다가 들키면은 혼나고 .....지금은 정환이네가 인수해 농사를 짓는다고 하는구나
정환아 일찍 인수를 했으면 우리가 고생을 덜 했지 ㅎㅎㅎㅎ
말무덤에서 바라본 김지....
요기가 우리 미향 총무님의 고향 덕재 진래 한식 주형 용덕 여친으로는 우리들의 우상 귀자 정숙이~~~~
학교에 다닐때 주형이네 집에서 구멍가게를 했는데 그때는 뽑기를 유행했는대 "또" 가 걸리면 다시한번
더 했는데 또를 또 사용을 하고 했구나~~~~~~~~~~~~~~
옛날에 이길을 통과 할려면 진래가 텃세를 좀 부렸지 ..똥개도 자기집 앞에서는 50점 따고 시작 한다고ㅎㅎㅎㅎ
요기가 굼마 대환 주환 도영 영분 순옥이~~~굼마에서도 도영이네가 가게를 했는데 학교에서 마치고 집으로 가면서 중간 지점이라 배가 고파 많이 이용을 했지 그때 인기가 좋은게 라면땅 .캔디 10원에 4개짜리 .쫀득이도 1개에 10원을 했을꺼야 연탄불에 구워 먹으면 맛이 기가막혔지 그리고 인기 있는게 생라면 한 봉지에 40원 한게 기억이 난다
친구들은 라면에 스프를 넣어서 즐겨 먹었는데 나는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실습을 하면서 설탕으로 시험을 하는데 누군가
미원을 가지고와 설탕인줄 알고 한 주먹을 먹었는데 미원이라 토하고 생 쇼를 했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그 쇼크로 인하여
라면 스프도 먹지않는다 ~~~~~
요기가 굼마 다리 건너 마을 핏골 경권 상일 성수 석주 영순 ...... 그때만 하여도 개울가에 물이 많아 수영을 하고 했는데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구나
여기서 경권이가 환상적인 수영이랑 다이빙 실력을 쌓았구나~~~~
요기가 지금 한참 공사중인 성덕땜인 약실 무시네 마을 익찬 춘희 문섭 그러고 보니까 여친들이 한명도 없네 ~~~~
요기가 진골이다 정복 규복 희석이 여친으로 차남 정옥 복자 종순 순애(작은 가다 )경순
앞에 트럭이 보이는 곳이 옛날에 백자 분교가 있던 자리이다
코흘개 시절의 모든 추억이 깃든 곳이구나
학교가 없으니 마음 한 구석이 횡하구나.....
지금은 정복이 형님이 인수해 밭으로 변했다~~~
분교 입구에 종순이네가 정미소를 했는데 그때는 한번씩 정미소에서 몰래 한 주먹씩 생쌀을 먹어도 너무도 달콤했는데~~~
백자교회 평상시에는 소 닭 쳐 다 보듯이 하다가 크리스마스때면 사탕을 받는 재미에 한번씩 들리곤 했지~~~
요기가 마지막 종점인 모래실 다른 마을이랑 뭔가 좀 느낌이 안 다르나 친구들아 ㅎㅎㅎㅎ
윤일 재봉 용정 상희 호상 창희 정해 경자 후남 준렬 순남..... 어릴때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애들이 워낙 똑똑해 조기 유학을
가는 바람에 초등학교 후반부터는 일이 재봉이 용정이 나 해서 4명이고 정해 경자 준렬이 순남이 해서 4명 이었는데 환상에 조를 이루어 남녀칠세 부동석을 조기에 졸업을 하고 어릴때부터 남녀 구분없이 어울려 놀았구나
그 시절만 하여도 남녀간에 말을 하면은 친구들이 흉을 보고 왕따를 시키곤 했는데 우리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되어
스스럼없이 어울려 놀았다
특희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멀어 아침에 버스를 이용해 등교를 하면은 학교에 최고 일찍와 겨울이면 추워 선생님의 배려로
숙직실에서 몸을 녹이면서 지내다 보니까 더욱 더 가깝게 친해졌구나
그때 숙직실에서 즐겨보던 프로가 바로 뽀뽀뽀다
정해는 우리친구 중에서 유일하게 장녀라 명절이면 부모님이 외갓집에 가시면 우리는 당연히 정해네 집에 모여서 그때 흔히하는
말로 올라이트를 했다
밤새도록 잠을 자지않고 코카콜라게임등 여러가지 게임을 했는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않는구나
때로는 불을 끄고 귀때기 때리기도하고 별별 놀이를 다 했구나
어느날 불끄고 놀다가 장농속에 준렬이가 들어갔는데 내가 밖에서 잠궜는데 문이 열리지않아 준열이가 무서워
엉엉 운 기역이 아직도 생생하구나
준열이네 집은 구멍가게를 해 아랫방은 우리들 차지였다
밤새도록 놀아도 별 간섭을 받지않고 놀았다
그때 즐겨하는 놀이가 편을 갈라 화투를 치는데 민화투라고 했어
305점 아니면 505점을 먼저 나는 팀이 이기도록 정했다
3팀으로 나누어 최고 먼저 나면은 공짜고 두번째 나면은 2000원
3등은 4000원을 내 군것질을 했다
일명 묵고내기 였다
그때 주로 먹는 것이 콜라에 빵이 최고 인기였다
때로는 짭쌀모찌에 황도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항상 모이면은 친구들의 뜨거운 열기로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재미있게 놀았다
그때는 돈이 없으면은 준렬이가 주인이라 준렬이가 무조건 외상을 해 주었다
아마도 그때 외상값을 다 받아도 준렬이네 큰 부자가 됐겠지 ㅎㅎㅎㅎㅎ
그렇게 밤새독록 놀다가 해가 밝아오면은 우리는 집으로 출근을 했다
그렇게 놀다보면은 12시가 넘으면은 용정이 모친이 한 번씩 직접 찿으로
오셨다
그러면 용정이는 꼼짝을 못하고 집으로 끌려 가야만했다
시간이 흘러 우리집에서도 자주 놀았는데 그때 아버지는 시간이
늦으면은 그만 놀고 집에 가라고 하셨다
그래도 계속 놀면은 우리 아버지의 최후의 수단인 두꺼비집을
내리신다 그러면은 그날은 할 수 없이 아쉬운 마음을 달려면서
집으로 가야만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설레이는 마음에
그때 한 께임이 자장면 내기였다
아마도 중학교에 들어갔어 처음으로 자장면은 먹었지 싶다
촌놈 안덕갔어 자장면도 먹고 출세를 했네....
지금 그때 그 추억을 생각을 하면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무 걱정없이 편안하게 즐겁게 보낸 시절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그것이 인생이겠지~~~~~~~~~~~~~~~~~~~~~~~~~
오늘 촌에서 더덕을 캤는데 크기가 엄청 크구나
모친께 더덕지를 담아 달라고 부탁을 했느데 다음에 완성이 되면은 산행대 들고 갈께.....
정말로 크고 탐스럽구나 그냥 구추장 양념을 해 숫불에 구워 먹으면 최고지~~~~
??????????????????????????????????????????
'여행과 산행 >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내 고향의 야생화 (0) | 2010.07.02 |
---|---|
[스크랩] 나의 텃밭 (0) | 2010.07.02 |
[스크랩] 송이버섯 (0) | 2010.07.02 |
[스크랩] 경복궁과 정해 (0) | 2010.07.02 |
[스크랩] 속리산 (0) | 2010.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