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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들...

묘사

by 눈사라 2010. 8. 13.

 

 

 

 

1970년대만 하여도 우리가 살던 곳은 산골 시골이라 물질적으로 어려운 시대였다

우리 부모님 처럼 보리고개나 굶거나 그런적은 없지만 군것질이라고 해도 부모님이 주신 몇십원으로 십원에

네개 캔디나 사탕을 주로 많이 사 먹고 라면을 사 생라면은로 먹곤했다..

 

그것도 용돈이 생길때나 먹는거지 아니면 하늘에 별따기로 기다리거나 또 아버지가 면 소재지 5일장에 가시면

군것질을 사 오시면 그때가 우리는 생일날이다  ㅎㅎㅎㅎ

하기야 그때는 생일이라고 따로 챙겨주고 그런 기억이 별로 안 난다

그것도 장에 가신다고 무조건 맜있는걸 사 오시는게 아니라 소를 팔거나 양잠을 하셔 그것을 팔때나

장에 갔셔서 목돈을 쥐는 날이면 때론 옷도 사오시고 맛있는 반찬이랑 사 오셨다 ..

 

우리는 아버지가 장에 가시면은 당연히 맛난걸 사오신다는 기대에 동구밖에 까지 마중을 가곤했다.

어쩌다가 아버지는 시장에서 막걸리를 한 잔 하시고 얼큰하게 취하셔 손에는 고등어만 한 손 달랑들고 오시면 어린 마음에

실망을 하여 아버지께 보채며 울고 불고 했지 ..

지금처럼 애들이 울면은 용돈을 줘 맛있는거 사먹으라고 달랬지만 그때는 부모님은 무심하게 그냥

신경을 안 쓰면 우리는 제풀에 지쳐 울음을 알았서 눈치를 보아 그치곤 했다...ㅎㅎㅎ

 

그 시절의 또 다른 맛있는 먹거리가 있었다 .

그때는 몇일마나 엿장수 아저씨가 리어카를 끌고 동네마다 돌아다니시면서 고물이랑 엿이랑

바꾸어 주셨다 .

그때 엿이랑 가장 많이 바꾸어먹던 인기좋은 고물이 비료포대랑 빈 병이다

실은 철근이나 쇠붙이가 활용도가 높았는데 쇠붙이는 한 번 사용을 하면은 시골에서는 다시

모으기도 힘들고 구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비료포대는 농사를 짓기때문에 항상 나오고 빈 병도 아버지가 술을 드시니까 일정 시간이 경과를 하면은 모였다.

엿장수 아저씨가 동네에 나타나 엿 가위로 찡그랑 찡그랑 소리를 내면은 우리는 그 소리에 자동으로 비료포대나 빈 병을 들고

반사적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바꾸어 먹는 엿맛이랑 지금의 어느 군것질 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맛있고 달콤했다

 수중에 들어온 엿은 최대한 맛의 행복을 오래 간직 할 려고 씹어 먹지도 못하고 맛을 음미하면서 살살 빨아 먹었지..ㅎㅎㅎ

지금도 그때의 습관이 남아있어 아이스크림이나 엿은 빨아 먹는게 더 맛있다..

 

엿장수는 일정기간에 맞추어 방문을 하는데 집에 있는 고물이 한정되어 엿장수가 와도 공치는 날도 많았다.

엿을 먹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은데 바꾸어 먹을 고물은 없고 그러면 집안을 싹싹히 뒤져 엿이랑 교환할게 없나 궁리를 하곤했다

그래도 없으면 엿을 먹고 싶은 욕심에 멀쩡한 고무 다라이나 부엌의 찬장에 엄마가 넣어둔 동전을 몇개 몰래 꺼내어

엿을 사 먹곤 했다 .

그 정도로 엿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쉽지가 않았다 ㅎㅎㅎ

 

하교길에 엿장수 아저씨를 만나 운좋은 날은 엿을 공짜로 먹는 날도 있다

그때는 시골길이 비포장이고 언덕길이 많아 아저씨가 혼자서 고물을 싣고 오르막을 오르기가 힘들기 때문에

우리가 대신 뒤에서 밀어 드리면 노동의 댓가로 엿을 주시곤 했다.

 

초등시절에 년중 행사로 가장 기대가 되고 우리를 설레이게 하는 일이 가을이면 행하는 묘사이다

지금은 추석전에 벌초를 하고 제를 올리든지 아니면 추석날 산소에 가 성묘를 하지만 그때는 가을이면 묘사라고 해 집집마다

떡이랑 과일이랑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를 하여 산소에서 성묘를 지냈다

 

지금도 문중에서 시조묘사나 문중묘사라 하여 지내지만 .. 그때는 모든 집에서 묘사를 지내면 우리들은 친구들이랑 보자기나

봉지를 들고 묘사를 지내는 일행들을 따라 함께 산소에 갔다.

묘사를 다 지내면 음복을 했다.

우리들은 줄을 써서 기다리면 순서대로 제주가 떡이랑 골고루 음식을 나누어 주셨다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에 우리들은 묘사를 지내는 몇군대를 거치면은 몇일동안의 먹을수 있는 훌륭한 간식거리를 얻었다

떡은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특히 소죽불을 때고 난후 그 알불에다 떡을 굽어 먹으면 그 맛은 환상적이다..

 

일반 가정에서는 묘사를 지내도 그렇게 성대하게 지내지않았지만 문중묘사는 문중에 어른들이 다 모여 묘사를 지내기 때문에 일반 묘사보다 규모나

차이가 많이 다르다.

우리는 어느 문중에 묘사가 언제인지 부무님께 정보를 입수하여 그날에 맞추어 만발의 준비를 하여 항상 대기를 하였다.

 그것이 그때는 우리들의 일종의 놀이이고 생활의 일부분이다..

 

그런데 가끔 묘사 지내는 날이랑 우리들의 학교수업이랑 잘 안맞는 날이 있다

초등시절에는 수요일이랑 토요일은 오전수업을 하고 일요일은 학교를 가지않기 때문에 상관이 없는데 부득히 다른날이 걸리면 마음이 넘 아프고

묘사떡을 못 먹는 생각에 그날은 공부도 머리에 들어오지않았다 ㅎㅎㅎㅎㅎㅎ

문중묘사는 우리들의 생일보다 더 잘먹는 그런 날이었다 .

 

수요일이나 토요일에 문중묘사가 걸리년 우리들은 수업을 마치자 마자 학교에서 십리길을 뛰었서 묘사떡을 먹는 생각에 힘든줄도 모르고

달려갔다 .

일반 집의 묘사는 나누어 주는게 량이 얼마 되지않았지만 문중묘사는 먹을 거리를 정말로 푸짐하게 나누어줘 그렇게 애착이 갔다 ㅎㅎㅎ

 

그때는 길을 지나다가 모르는 집에서도 묘사를 지내도 뒤에서 묘사를 끝나기를 기다리면 다 지낸뒤 음복을 나누어 주셨다.

그 시절에는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했고 그런 일들이 우리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아닐까 .

지금이야 성묘를 지내도 가족끼리 오붓하게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가지만 그때도 물론 집안의 행사 이지만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많은

영향을 주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그런 문화가 다 사라지고 추석을 앞두고 몇주전에 대소가가 다 모여 단체로 예초기를 들고 함께 벌초를 하면서

친진들간에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우정과 소통의 자리로 변했구나 .

 

묘사의 정겨운 자리는 사라졌지만 이제 조금있으면 또 다시 추석이 다가오구나.

일가친척들이 다 모여 함께 벌초를 하면서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얼마 남지가 않았구나..

추석이 기다려지고 마음은 벌써 일가친척이 모이는 고향에 가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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