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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들...

애향단

by 눈사라 2010. 7. 8.

 

 


 

백자 분교에서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이 되면서 우리들은 10리 길을 걸어서 본교인 현남초등학교 까지 등교를 해야만 했다

어린 나이에 10리길은 상당히 먼 거리였다  그러니까 1.2학년은 동네에 있는 백자분교를 다니고 조금 크면은 본교로 갔다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70년대라 새마을 운동이 한 참 성황리에 활성화가 되고 가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하여 국민 계몽운동이 많았다

 

그때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이것도 그런 종류의 일환으로 시작을 했지 않을까 생각이든다

다름아닌 "애향단" 이다

 

아침에 등교를 할때면 동네 어귀에 모두다 모여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명도 빠짐없이 다 모여 1학년부터 키 순서대로 줄을 써 애향단 국기를 앞세우고 학교까지 일렬로 행진을 하면서 등교를 하였다

아마 그때 일이가 애향단 국기를 들고 많이 갔지않을까 생각이든다

 

보통 마을 단위로 구성을 해 6학년 애향단장의 통솔 아래 줄을 맞추어 씩씩하게 걸어서 등교를 하였다

줄을 맞추어 걸어가면서 구령에 맞춰 하나 둘 하나 둘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도 부르면서 씩씩하게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어 다부지게 걸어갔지~~~~ㅎㅎㅎㅎ

 

아침에는 모두다 함께 등교를 하기 때문에 애향단 활동이 활성화가 되었는데 하교때는 학년마다 수업을 마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집으로 오곤했다

 

그러나 토요일은 반공일이라 해 전학년이 오전 수업을 하기 때문에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서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을 듣고 종회가 끝나면 마을별로 애향단 국기를 앞세우고 출발을 하였다

 

아침에는 그나마 질서를 지키면서 갔는데 집에 갈때는 학교를 벗어나면은 줄은 허지부지되어 개인적으로 많이 간것 같구나

 

우리 위에 선배들은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규칙이 엄격해 더 잘지키고 모범적으로 활동을 했을것이다

우리가 학교를 닸닐때는 70년대  중후반이라 그런 의식이 점점 약해질때이다.

 

애향단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몇가지 있다

가을이면 해 마다 운동회를 했다

그때 운동회에 빠지지않고 했던 놀이가 차전놀이 이다

차전 놀이를 할려면은 낙엽송같은 긴 나무가 필요한데 지금 생각을 하면은 상상이 안되는데 그때 그 어린 신분에 우리가 직접 산에 올라가 그 큰나무를 베어 아침에 학교를 갈때 그 무거운걸 어깨에 다 함께 매고 등교를 했다

 

지금 초등학생을 생각하면 완전히 애기인데 그때는 우리가 그런 일을 했다니 지금 생각을 하면은 대단하구나

아무래도 시골에서 자라고 평상시에 농사일도 도우고 산에 갔어 나무도 하고 그랬어 단련이되어 모든 일을 쉽게 적응하고 처리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애향단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인것은 바로 일요일이면 아침에 일찍일어나 마을 청소를 하는것이다

각자 빗자루를 들고 정해진 시간에 약속장소에 모여 온 동네를 구석구석 깨끗히 청소를 하였다

청소와 함께 2대 핵심 사업은 다름아닌 화단 가꾸기이다

삽과 갱이를 들고 마을 입구의 잘 보이는 공터를 골라 화단을 만들어 코스모스 .해바라기 . 접시꽃 등 최대한 정성를 들여 아름답게 꾸몄다

 

이 일은 초등학교 시절동안 꾸준히 하고 잘 지켜졌다

일요일에 참석을 하지 않으면 애향단장은 불참자를 애향단 일지에 적어 학교에다 선생님에게 보고를 했기 때문에 보통 배짱이 아니면 대부분 참석을 했다

애향당 일지에는 그날 청소했는 작업랑 아침에 우리들이 한일을 상세히 적었다

 

그때 우리집앞에 공터가 커 화단을 만든 기역이 있구나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나는일은 일이 형 대희형이랑 뺄리형이 시비가 붙었는데 한 참 입씨름을 하다가 대희형이 갱이로 찍어버린다고 협박을 했다 그러니가 뺄리형이 그러면 찍어보라고 했다

설마 했는데 대희형이 정말로 머리를 찍어버려 머리에서 피가난 기역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동네마다 개인이하는 구멍가게가 있고 동네 부녀회에서 따로하는 구판장이 있었다

구판장은 부녀회에서 운영을 하기 때문에 개인이하는 구멍가게 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그때 우리가 4학년이고 6학년인 일찬 형이 애향단장 이었다

 

일찬 형이 카리스마가 좀 있고 싸움도 잘 했다

그때는 싸움을 잘하면 장땡이고 모든게 통했다

 

그때 형이 중점적으로 추진한 공약사항이 두가지인데 하나는 우리도 부녀회처럼 우리모두가 돈을 각출하여 개인 주주가 되어 회사를 (구멍가게) 설립하여 주주들이 직접 운영하여 이익이 생기면은 주주에게 배당하는 형식이다

그 시절 그런 생각을 했으니 상당히 시대를 앞서갔구나

물론 계획은 거창하게 세웠으나 현실과 괴리가 있고 수요와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않아 결국은 허지부지되고 말았다

 

지금생각하면 어린것들이 허무맹랑하고 생각이 기특하구나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된 사람도 많겠지 ㅎㅎㅎㅎㅎ

 

그리고 두번째 핵심 과제가 우리가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을 하여 판매를 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방법이다

 그 시절에 산이나 들을 계간하여 부족한 농지를 만들어 농사를 많이 지으니까 우리도 직접 짜투리 땅을 계간하여 농사를 지어보자는 아이디어다

그리하여 대상지를 선정하여 계간을 하였다

대상지는 원당골의 야산이었다

그곳은 옛날부터 약간의 민둥산에 공터도 많고 우리가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평상시에에 거기서 씨름도 자주하고 했어 쉽게 결론을 내려 농작물을 경작하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에 전학년이 다모여 원당골에 집하하여 대충 갱이로 밭을 만든뒤 콩를 심었다

그때는 만만한 농사가 아무래도 콩이었다

가을이면 콩을 수매하러 오는 장사꾼도 있고 두부를 많이 만들기 때문에 수요도 충분하다고 판단을 했다

그러나 콩을 심었지만 야산에 비료도 없이 심었으니 콩이 잘 자라일이 만무했다

어린 초등학생이 제대로 농사를 짓는다는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결국은 콩 농사는 얼마 못가고 실패로 끝났구나

 

핵심과제가 모두 실패로 끝났지만 그 어린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고 목표를 세웠다는 자체가 지금 생각해도 다른 동네 애들이랑 뭔가 좀 달랐구나

원래 모래실 애들이 어릴때부터 총기가 있고 크게 될 인물이라고 많이 들었는데 ㅎㅎㅎㅎㅎ

 

초등시절에 우리가 그런 일들을 하고 생각을 했다니 지금 생각을 해도 우습고 재미나면서도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지금의 초등학생이 가슴에 어떤 추억이 있을까 ?

학교를 마치면 태권도에 피아노에 학원에 구속되어 개인시간이 없고 놀이라고는 컴퓨터에 빠져 시간을 보내고 겨우 주말이면 부모님이랑 여행을 떠나 자연이랑 접하는게 다구나

그러니 가슴이 메마르고 개인위주로 성격이 변하니 한편으로 가슴아프고 안탑깝구나.

 

그래도 우리는 고향에서 친구들이랑 함께한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있으니 복받은 세대라고 생각이든다

추억을 함께한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내 자신이 넘 행복하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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